대학.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대표적 고등교육기관이자,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생산하는 연구기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인식, 특히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있어 대학의 인식은 그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중고등학교의 목표, 학벌의 지표, 전국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버린 곳이 지금의 대학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하는 대학 입시의 장이 되어버렸고, 많은 학생들이 대학 서열에 따라 자신의 성적으로 진학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골라서 진학하고 있고, 대학에 가기 위해 대학에서나 그 이후에는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을 공부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대학 입시는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입시의 문제에 대해 논하기 위해, 일단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열광하고 대입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예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로 여겨졌다. 물론 현재로서는 학교 간판만으로 출세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지금도 학벌이 미래의 출세로 이어진다는 심리가 우리에게 박혀 있다. ‘입시 위주 교육’의 근본은 결국 더 나은 수준의 삶을 살기 위한 욕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대한민국의 입시는 치열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교육은 출세를 위한 수단이 아니지만, 관습적으로 학벌이 곧 출세라는 인식이 있으므로 모두가 입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입시는 한없이 공정하게 모든 학생을 줄세워서 선발해야 한다. 입시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계층이 입시 제도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기에, 학생 개개인의 수준을 어떠한 하나의 평가 기준으로 줄세워야 ‘입시 비리’같은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 개개인을 어떻게 하나의 평가기준으로 줄세우고 이를 ‘학생의 역량 순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취미와 특기와 진로가 다양하고,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이 학생별로 너무나도 다른데, 어떻게 그 많고 다양한 학생들을 몇 가지의 평가 지표로 줄세우고 ‘이 학생이 저 학생보다 우수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입시에서는 어떤 학생이 우수하다고 그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이 다른 학생보다 우수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개개인을 평가해서 그 학생이 뛰어난 분야를 찾고 역량을 입시 과정에 반영하기 어렵다.
그런 본격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입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자. 지금의 대한민국 입시는 크게 정시와 수시로 나뉜다. 정시는 표준화된 시험인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의 성적과 이를 통한 평가 등급을, 수시는 학생부를 비롯한 고등학교 내 학업 성적과 활동 내용을 기반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어떤 전형을 통해 입시를 준비하던, 입시를 통과하는 데는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학습을 하는 것이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 이수와 개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학습보다 도움이 되고, 또 입시를 위한 학습이 필요하기도 하다. 결국 고등학생들은 이러한 대입 과정을 어떻게든 통과해야 하는 위치에 있고, 그렇기에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교육 수요에 맞춰 대입 준비 위주의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운영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나라 입시 위주 교육의 현위치이다 - 고등학교는 대학교에 학생을 보내기 위한 시설이다.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에 필요한 범위의 과목과 지식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대학 입시에 전략적으로 작용하는 활동을 진행한다. 각종 특별활동과 동아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스펙이 되어 있고, 고등학교 3학년 수업들은 수능 출제 과목을 대비하는 강의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교육의 본질이자 목적 중 하나인 진로 탐색은 무시당하기 쉽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일이 공공연히 일어난다. 당장 수많은 학생들이 - 무려 초등학생, 유치원생들도 -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일명 ‘의치한약수’를 바라보며 공부하고 있고, 입결이 높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관심 분야와 무관하게 자신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어떤 학과, 어떤 전형에 지원하면 합격률이 높을지 전략을 찾는 진로 상담은 많지만, 정말로 그 학생이 무엇을 좋아하고 진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진로 상담을 받기는 어렵다. 이전까지 진로가 없었던 학생이라도, 수시 원서를 넣을 때가 되면 진로와 인생 계획을 결정해서 대학에 지원해야 한다. 수많은 학문과 진로에 대해 탐색할 시간, 그중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을 시간, 그래서 무엇을 하고 살고 싶은지 정할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데, 학생들은 그럴 시간이 있으면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를 하나 더 푼다. 그것이 대학 진학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입시 시스템에 대해 논하기는 많이 이르지만, 어쨌든 대학에 지원하고 입시에 뛰어드는 학생은 대학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꿈을 이루고 싶은 학생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진로가 무엇인지 정해지지도 않은 채 일단 입시를 위한 학습을 하고 자신이 갈 수 있는 성적의 대학과 학과에 맞추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 결과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고, 실제로 대졸자의 전공직업일치도도 50%가 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상당한 국가적 낭비이다. 대략 10~20년 후에는 우리나라 경제 인구의 중심이 되어 우리나라를 이끌어야 할 학생들의 모두가,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거나 실제로 각 학생들의 진로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과는 무관한, 입시라는 공통된 목표만을 위해 달리고 있다. 대졸자의 전공직업일치도조차 50%가 채 되지 않는데 입시 역량과 직업이 일치하는 학생의 수는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이마저도 한 번에 입시에 성공하는 경우의 이야기이다. 입시에 실패하는 경우, 혹은 대학에서 전공 분야가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고 결론짓는 경우, 그 다음해의 입시를 위해 1년을 더 준비해야 한다. 시간과 돈이 모두 낭비되며, 정말로 입시 하나만을 위해 달려야 하기 때문에 대학 입학 이후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을 하며 1년이라는 시간과 돈을 버리게 된다.
결국 대입은, 대학에서 수용할 수 있는 학생의 수보다 교육받고자 하는 학생이 더 많을 때 더 우수한 학생, 혹은 더 교육해주고 싶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과정이다.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척도로 크게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보자. 학과에서 가르치는 것 이전에 학습해야 할 과목에서의 충분한 실력, 그 학과에서 가르치는 것을 잘 학습할 수 있는 수학 능력, 그리고 그 학과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한 관심과 열정.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학생이라면 어떤 대학에서든 선발할 가치가 있다고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입시는 이를 잘 반영하고 있을까? 먼저 정시를 보자. 수능은 위 3가지 중 두 번째인 수학 능력의 측정을 목표로 한다. 각 과목에서 교육과정에서의 학문적인 지식을 평가하기도 하나, 수능의 궁극적인 목적은 문해력이나 수리력 등의 논리/사고력을 평가하는 데에 있다. 아쉽게도 어떤 학과에 관심이 있는지는 반영해내지 못한다. 수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생부 중심의 평가방식은 이러한 문제를 일부 해소하는데, 고교 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진로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이 학생부를 통해서는 일부 반영될 수 있다. 그러나 수능에 비해서 수학 능력의 측정이 어렵기도 하고, 선행 과목에 대한 능력도 수능에 비해 더 뛰어난 평가를 할 수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부 외의 수시 전형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논술 등의 대학별 지필시험이나 특기생 전형, 예체능 관련 학과의 실기시험 등이 그 예다. 대학별 지필시험이나 실기시험은 대학에서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대학이 원하는 방향의 평가 기준을 세우고 이에 맞추어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몇 시간동안 문제 몇 개를 푸는 것으로 수학 능력이나 학문에 대한 관심을 평가하는 데는 너무나도 한계가 많다. 그나마 특기생 전형이 3가지의 평가 기준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전형이나, 이쪽은 평가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공정성 문제로 점차 줄여나가고 있는 것이 추세이다. 이들을 모두 반영할 수 있는 입시 과정이 있기는 할까? 만약 글의 앞부분에서 이야기했던 공정성과 줄세우기 문제가 없었다면, 위의 특기생 전형이 어느 정도 답이 될 수 있겠다. (실제로 필자는 특기생 전형을 준비하면서 이상적인 입시에 매우 가깝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그러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정한’ 입시 방법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적아도 지금까지는 그런 선발제도가 발명되지 못했다. 지금으로서는 공정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최대한 다양한 평가기준과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골고루 선발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것이 우리나라 입시의 현위치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상적인 대입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이상적인 대학 입시에서는, 대학 입시만을 위해 투자하는 내용이 없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입시 그 자체보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내용과 그 분야에서 더 우수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 더 중요시되어야 한다. 대학은 대학이라는 수단을 향해 달리는 학생보다는 자신의 진로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고교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실제로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러한 생활을 목표로 했다. 남들이 대학 면접이나 수능을 준비하는 동안 대부분의 입시 전형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올림피아드를 준비하거나, 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써서 학회에서 발표하거나, 각종 대학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세미나를 찾아서 듣는다던가 하며 고3 생활을 했다. 그와는 무관하게, 논술 시험에서 남들보다 수학 문제를 하나 더 풀어서 대학에 왔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국내에 위의 다양한 활동들을 기반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전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4개 과학기술원에서 운영하는 특기자전형에서는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진행한 다양한 활동의 사실상 전부를 평가한다. 실제로 필자는 이러한 특기자전형에 지원하기 위해 300장 이상의 서류를 제출했고, 입시를 위해서보다는 관심 있고 재밌어서 진행했던 다양한 활동들을 필자 개인의 역량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었다. 필자는 해당 전형에서 불합격했지만, 그럼에도 해당 특기자전형이 꽤나 이상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특기자전형은 평가기준이 매우 애매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평가 기조도 매년 변화하고 있고 평가 방식이 완전히 비공개되어 있기도 하다. 공정성 문제가 있으면 전형을 확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특기자전형을 운영하는 대학들의 전형 선발 비율은 매우 작다. 그렇기에 특기생 전형도 우리나라에서는 입시 전형의 옳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입시 문제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인식과 관습, 선발 방식의 부재 등 정말 다양한 문제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공정성, 수학 능력, 학생의 진로와 열정 등 다양한 평가 요소가 모두 실제로 중요하기 때문에, 근시일내에 입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 2024년 작년의 출산률은 0.75를 기록했으며 학령인구가 매우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당장 십수 년 내에 학생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입결이 높은 명문대에 진학하기에는 매우 어렵겠으나,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학습하는 것은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대입이 덜 치열해져서 위의 문제들이 어느정도 완화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에 따라서 어떤 새로운 문제가 생겨날 지도 알 수 없다. 이처럼, 사실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전에 수많은 문제점이 사라지고, 생겨나고, 변화할 것이다. 지금 당장 입시 개혁안을 제시한다고 한들 이는 수 년 뒤의 학생들에게나 적용할 수 있다. 그때쯤이면 지금의 개혁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므로, 적어도 입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다양한 전형과 선발 방식을 운영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다양한 학생들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기준을 세우고, 각 평가기준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학생들을 선발하고, 이를 통해 선발하지 못한 뛰어난 학생이 있다면 그런 학생의 역량을 반영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반영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물론 충분히 공정하지도 못하고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충분히 반영하지도 못하겠지만, 어쨌든 다양한 방면으로 뛰어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이 입시를 위해 고등학교 생활을 버리기보다는 입시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